일 잘하고, 잘 웃고, 사회생활 멀쩡히 하는 내가 우울증?!
남들에겐 '갓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서서히 방전되어 가는
'고기능 우울증'의 신호를 알아봅니다.
'기능을 잘해서' 오히려 위험한 우울증
A씨는 회사에서 인정받는 능력자입니다.
마감도 잘 지키고, 회의도 적극적으로 이끌어 가죠.
동료와 실없는 농담도 하고, 회식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퇴근 이후엔 조금 다릅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쓰러지고, 씻는 것도 귀찮고, 친구의 메시지엔 답장할 힘도 없습니다.
예전에는 좋아했던 것들도 별로 즐겁지 않고, 아침이 오면 생각합니다.
'또 하루가 시작됐네.'
그래도 출근은 빼놓지 않는 A씨,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겉으로는 출근, 학업, 대인관계 등 일상생활을 문제없이 수행하지만 내면에는 만성적인 우울감과 무기력, 공허감을 겪는 상태를 '고기능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고기능'이란 우울 증상이 있어도 사회적, 직업적 기능을 비교적 잘 유지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은 "나 혹시 우울증인가?" 싶다가도 "우울증이면 사회생활도 잘 못한다던데... 그냥 피곤한 거겠지."라고 치부해버립니다. 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처럼 보여 주변에서 알아차리기 어렵고, 본인 역시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는 사실을 뒤늦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고기능 우울증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고기능 우울증: 정식 의학 용어는 아니며 의학적으로는 주요우울장애(MDD), 지속성 우울장애(PDD), 적응장애 등의 양상과 유사합니다. 관련 도서 및 대중매체 확산을 통해 대중적?임상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냥 '번아웃' 아닌가요?
고기능 우울증은 흔히 번아웃과 혼동되는데요. 둘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은 증상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입니다.
"회사를 그만두면 다시 즐거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번아웃은 주로 과도한 업무와 만성적인 직장 스트레스로 인해 나타나기 때문에 일을 떠나 충분히 쉬거나 좋아하는 활동을 하면 어느 정도 활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반면 고기능 우울증은 일뿐만 아니라 취미나 인간관계 등 삶 전반에서 의욕과 즐거움이 떨어지고, 충분히 쉬어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말해 번아웃이 ‘일 때문에 배터리가 방전된 상태’라면, 우울증은 ‘충전기를 꽂아도 삶의 배터리가 충전되지 않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다만 두 상태가 함께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에 증상이 오래 지속된다면 정확한 진단이 필요합니다.
고기능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특징
우리는 우울증을 흔히 이렇게 상상합니다.
- ·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함
- · 출근 혹은 등교를 제대로 하지 못함
- · 업무 혹은 학업을 제대로 하지 못함
- · 대인관계를 기피함
- · 웃지 않고, 우는 날이 대부분임
하지만 실제 우울증의 모습은 훨씬 다양합니다. 우울한 기분뿐 아니라 흥미와 즐거움의 감소, 피로감, 집중력 저하, 수면이나 식욕의 변화, 불안과 초조, 무기력감, 죽음에 대한 생각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잘 웃고, 직장생활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업무 성과가 좋다고 해서 우울증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어떤 사람들은 상당한 우울 증상을 겪으면서도 책임감이나 성취 욕구 등으로 직장이나 학업과 같은 외적인 기능을 상당 기간 유지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울 증상을 겪으면서도 겉으로는 일상 기능을 잘 유지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 완벽주의와 높은 자기기준
- 실패와 실수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과 잘해내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경향은 힘든 상황에서도 계속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할 수 있습니다.
▶ 과도한 책임감
- 직장이나 가정에서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상태보다 역할 수행을 우선할 수 있습니다.
▶ 감정억제와 도움 요청의 어려움
- 힘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약함으로 여기거나 타인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혼자 버티는 패턴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 일 · 성취를 통한 회피
- 가만히 있을 때 공허감이나 부정적인 생각이 커져 끊임없이 일하고 일정을 채우기도 합니다.
▶ 오랫동안 형성된 대처 방식
- 어린 시절부터 "힘들어도 해야 한다", "좋은 결과를 내야 인정받는다"는 방식으로 적응해왔다면 우울해진 뒤에도 겉으로 기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가진단 테스트] 고기능 우울증 위험신호
미국 정신과 의사 주디스 조셉의 책 '고기능 우울증'에서 제시한 자가진단 체크리스트
이럴 땐, 병원으로 오세요!
▶ 우울감이나 무기력이 2주 이상 지속될 때
- 단순히 며칠 기분이 가라앉은 정도가 아니라 이전과 다른 상태가 계속된다면 평가를 받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출근은 하지만 일상생활의 다른 부분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 회사에서는 멀쩡하지만 퇴근하면 씻거나 식사하는 것조차 버겁고, 주말 내내 누워 있거나 사람을 피하는 상태가 반복된다면 “그래도 출근하니까 괜찮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예전에 좋아했던 일에서도 즐거움이 사라질 때
- 여행, 운동, 친구와의 만남, 취미 등을 해도 별다른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무쾌감'은 우울증에서 중요하게 보는 증상입니다.
▶ 수면·식욕·집중력에 뚜렷한 변화가 생겼을 때
- 너무 많이 또는 적게 자거나, 식욕이나 체중이 변하고, 업무 실수가 늘거나 간단한 결정조차 어려워지는 등의 변화가 지속된다면 진료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 쉬어도 회복되지 않을 때
- 휴가나 주말을 보내도 에너지가 돌아오지 않고 무기력과 공허함이 계속된다면 단순한 피로나 번아웃 이외의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죽음과 자해?자살 생각이 들 때
- “사라지고 싶다”,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이나, 자해·자살 생각이 생긴 경우에는 증상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출근을 잘하고 있는 지와 관계없이 즉시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