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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원과 우리가족

#2. 헤맨 끝에 얻은 것은 ‘가족’이었다 ①

일생에서 ‘소중한 가족’의 탄생만큼 감격스럽고 감사한 순간이 또 있을까요? 지난 61년간 차병원에서는 40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났고, 차병원 난임센터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1시간에 1명의 태아가 잉태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분들이 차병원과 인연을 맺으며, 감동의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차병원과 우리가족> 코너에서는 차병원의 인술을 통해 단란한 가정을 이루거나, 건강한 삶을 되찾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결혼하면 아이를 갖고, 낳는 일이 당연한 줄 알았던 우리, 난임 앞에 섰다.


3년째 연체해오던 것이 있었다. 2016년 12월, 차 여성의학연구소 서울역센터에 보관했던 동결배아 두 개에 대한 보관료였다. 그 날도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동결배아에 대한 보관료를 내지 않으셔서 전화 드렸어요. 혹시 계속 보관하실 생각인가요?” 요동치는 마음과는 상관 없이 이끌리듯 “네, 보관할게요. 보관료는 곧 내겠습니다” 대답을 하고는 먼 산을 쳐다보았다.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몬타나주로 향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도로 위 외롭게 달리는 차 안이었다.

남편과 나는 2016년 다섯 번째 시험관을 끝내고는 모든 것을 잊은 듯이 지나가는 시간을 즐겼다. 곳곳 여행을 다니고 취미생활을 했다. 보관료 연체에 대한 안내 전화를 받은 날도 3주 간의 미국 여행을 즐기던 중이었다. 500km 먼 길을 떠나는 도로 위에서, 나눌 대화 소재도 떨어진 우리에게 낯익은 고민거리가 던져진 참이었다. 3년 간 외면해왔던 일이 피할 수 없이 다시 다가왔다.

결혼하고 1년 후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김효정, 홍성윤 부부는
‘아이의 태명을 뉴요기’로 짓자’며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상상한 적이 있었다.
이때만 해도 난임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처음부터 우리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를 피했던 것은 아니었다. 2014년 1월 결혼을 할 때만 하더라도 신혼 생활을 1년 정도 즐긴 후 아이를 갖고 낳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2015년 9월 미국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면서는 “태명을 ‘뉴요기’라고 짓자”며 생기지도 않은 아이를 상상한 적 있었다. 2015년 11월 큰 염려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산부인과에 들렀을 때만 하더라도 오랜 시간 고민하게 될 문제를 마주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임신을 준비하면서는 산부인과에 들러보는 것이 좋다는 주변의 조언을 받아 주변 산부인과에 들른 것이 시작이었다. 피 검사를 하고 나팔관 조영술을 받으면서도 매년 으레 받는 건강검진을 받는 것마냥 편한 마음이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내원했어야 했지만 그마저도 귀찮아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김효정님은 건강하세요”라고 흘리듯 말했다. 그러니 2016년 1월 뒤늦게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 볼 생각을 한 것은 우연에 가까운 일이었다. 꽤 추웠던 날 진료실에서 마주 앉은 의사는 미간을 조금 좁히며 말했다.

“시험관을 해야 할 것 같네요. 난소 나이가 45세로 나왔는데,
이 정도면 자연임신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사의 말을 들으며 차라리 웃어버린 것은 ‘시험관’이 무엇인지, 난소 나이 45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 집에 와서 찾아봤더니 반 년 간의 임신 시도가 매번 실패로 돌아갔던 이유가 있었다. 퇴근해 만난 남편에게 일부러 가볍게 말을 꺼냈다. 남편은 나를 위로해주었다.

“평생 생각해본 적 없는 문제에 마주쳤네. 혼자서 그런 말을 듣게 해서 미안해.”

위로 받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때에 되려 위로를 받으니 오히려 멍했던 정신이 일깨워졌다. 순간 남들처럼 자연스럽게 임신해 아이를 갖는 일은 매우 어렵다는 현실을 실감했다. 다시 의사를 만나야 했다.

그러나 남편과 나는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집 근처에 난임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있다는 것만 파악하고는 별다른 정보도 없이 무작정 병원 문을 두드렸다. 어리둥절한 우리와 마주 앉은 의사는 “아직 젊으니까 인공수정부터 해보자”며 이끌었다. 뒤늦게 난임 시술이 꽤나 많은 비용을 들여 진행된다는 걸 알았고 매일 같이 주사를 맞고 약을 챙겨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불과 5~6년 전의 이야기지만 당시만 해도 난임은 웬만해서는 숨기곤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치부로 여겨지곤 했다. 회사에 출근해 난임 판정을 받았다고 공개하자 모두가 당황한 낯을 보였다. 난임 휴가 제도도 없을 때라 연차를 소진해서 시술을 받아야 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지식이 없는 50대 남자 부장은 인공수정 시술을 한 당일에도 출근할 것을 요구했다. 인공수정 시술을 받고 한 시간 좁고 낡은 병실에 누워 있다 출근한 그 날은 유독 바빴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틈 없이 좁은 파티션 사이를 오가며 일을 해야 했다. 집에 돌아와 서러운 눈물을 흘리며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것이 난임 판정을 받기 전과 같을 수 없었다.

난임은 단순히 ‘아이를 가지기 어렵다’는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임신이 되었다면 고민하지 않았을 심리적·신체적 문제들이 쏟아졌다. 그러나 문제를 직시하고 차근차근 해결해나갈 여유를 찾지 못했다. 난소 나이가 많다는 것은 가용 난자가 적다는 것이다. 그만큼 빨리 의학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완전히 때를 놓치게 된다는 말이었다. 마음을 추스릴 새 없이 시술에 임했다. 엽산이 포함된 영양제를 챙겨 먹기 시작했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지방 어느 곳 한의원에 들러 한약 여러 첩을 지어 마셨다. 난소 기능이 더 떨어지기 전에, 휴식 시간 없이 시술이 계속 됐다.

두 번의 인공 수정 시술이 의미 없이 흘러간 후에야 의사는 “시험관으로 넘어가자”고 선언했다. 쉴 틈 없이 시험관 시술이 시작됐다. 이틀 혹은 삼일에 한 번씩 병원에 들러 진료를 받고, 매일 주사를 맞았다. 남편은 주사 바늘을 두려워하는 나를 대신해 매일 같은 시간에 주사기를 들었다. 하루는 주사 바늘 때문에 얼룩덜룩 멍이 든 배를 어루만지며 안타까워 손을 떨기도 했다. 두 번의 인공수정, 두 번의 시험관 시술에 우리는 시들어가고 있었다.

기력을 빼앗기는 요인은 시술 자체에만 있지 않았다. 부하 직원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상사의 채찍질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어떤 날에는 퇴근한 후 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울며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업무를 계속 하면서는 도저히 난임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장을 건너뛰고 대표에게 직접 연락했다. 난임 시술을 받기 위해 휴직계를 쓰고 싶노라고 말을 꺼내자 나이 지긋한 60대 남자 대표 역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남편 홍성윤 기자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
지금도 그렇지만,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난임 시술을 받는 일은 매우 힘겨운 일이다.

그렇게 회사 일까지 쉬어가며 난임을 극복하려고 했다. 난소 기능이 더 떨어지기 전에 한 달에 한 번씩 시술을 받다 보니 3월에 시작한 첫 인공수정 시술부터 두 번째 시험관 시술까지 걸린 기간은 겨우 5개월에 불과했다

두 번째 시험관 시술을 치르던 때는 한여름이었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배아를 이식하고 나서 몸을 뉘어 가만히 있노라면 아랫배가 찌릿찌릿 아파오곤 했다. 배아가 착상을 하는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앞선 세 번의 피검사 결과와 같은 0점. 전혀 임신이 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전해 듣고는 한동안 끊었던 술잔을 기울였다. 한참 취해 친구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듣다가 문득 “병원을 바꾸어 보는게 어때”라는 제안을 받았다.

사실 남편과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난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깨우치던 참이었다. 난임이란 감기 같은 질환처럼 그저 집 근처 아무 병원에나 들어가 해결 받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흔히 난임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정답이 없다고들 했다. 임신 과정처럼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어디 있느냐고 “하늘에 맡기라”며 위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저 운이 좋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면 왜 의학의 힘을 빌리는 것일까.

난임 시술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나서 얻은 장점 중 하나는 도움을 주려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난임을 극복한 경험이 있는 지인이 조언을 줬다.

난임 역시 의학 기술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병원을 ‘선택’해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전해들은 이야기는 차병원에서 난임 문제만을 다루는 센터를
서울역 부근에 개원한다는 소식이었다.

차병원에서 내로라하는 의료진이 모두 모인 것도 눈에 띄지만, 기술력을 집약해 놓은 시설들이 믿을만하다고 했다. 시험관아기 시술에는 배양 기술과 배아 보존 시설이 중요하다면서 차병원을 선택해보라고 권유 받았다.

집 근처 난임 병원에 다니다가, 2016년이 되어서야
부부는 지인에게 추천 받고, 차병원 서울역센터로 병원을 옮겼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 세 번째,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았다. 보통은 두 달에 한 번씩 시험관 시술을 하기 마련인데 난소 기능이 임신 불가능한 수준까지 떨어져 있는 나로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매달 시술을 받으면서 반 년 안 되는 시간을 보냈다. 짧은 기간 여러 번의 시험관을 실시한다는 건 꽤나 지치는 일이었다. 어떤 날에는 출근길 정체로 꽉 막힌 강변북로에서 운전대를 잡고 차를 돌리고픈 충동에 휩싸인 적 있었다.

차라리 몸은 힘들지 않았다. 이틀 혹은 삼일에 한 번씩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나 매일 주사를 맞으며 생기는 신체적인 변화는 견뎌낼 만했다. 힘든 것은 심적인 부분이었다.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죄책감 비슷한 것이었다. 나로 인해 우리 부부가 난임에 이르게 되었다는 죄책감은 그래도 남편의 격려와 도움으로 조금씩 극복해 나갔다. 다음으로 강해진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억울함은 주변에서 아이를 갖는 지인이 늘어나면서 더욱 강해졌는데 이유도, 증상도 없이 찾아온 난임이라는 질병에 억울해지는 감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억울함은 다양한 감정으로 번졌다. 일을 그만두고 난임 극복에만 온 힘을 쏟다 보면 몸과 마음의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해졌다. 어느 날은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희망적인 생각이 들었다가 또 어느 날은 비관적인 기분에 빠졌다. 감정이 오락가락 파도를 그리다 보면 한 가지 깊은 생각이 떠오르곤 했다. ‘왜 이렇게까지 임신하려고 애쓰는지’ 회의감이었다.

난임 치료를 받으면서 김효정 기자는 심적인 부분이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특히 증상도 없이 찾아온 난임이라는 질병에 억울해지는 감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시험관아기 시술의 과정에는 여성의 몸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생리가 시작되면 시험관아기 시술도 시작된다. 생리 시작 이틀째부터 병원을 방문하여 진찰을 받는다. 매일 난포를 키우는 주사를 맞아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하고 정자를 채취해 수정란을 만들고, 배아를 이식하여 착상시키기까지 의학 기술의 힘이 필요하다. 남는 배아는 냉동시키곤 하는데, 난소 기능이 떨어져 있는 나로서는 냉동 배아를 얻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난소 기능이 떨어져 있다는 것은 그만큼 난포가 많이 생성되지 않는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주사를 용량껏 매일 맞아도 두 세 개 생기기 일쑤인 난포에서 배아 겨우 한 두 개 얻어 놓고는 임신이 잘 되길 바라는 게 확률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기도 했다.

불확실함과 무기력함, 억울함 같은 감정들은 짙은 회의를 가져왔다. 특히 다섯 번째 시험관을 거치면서는 난임은 극복할 가치가 있는 질병인지 끝없이 질문을 던졌다.

마침 다섯 번째 시험관에서는 운이 좋게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할 수 있어 배아를 두 개 냉동시킬 수 있게 되었다. 지금껏 그때 그때 생성되는 배아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시험관을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배아를 저장해 두었다가 나중에 이식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

처음부터 다섯 번째 시험관을 하고 쉴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나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시험관 사이 짧은 휴식기에 훌쩍 떠났던 여행이 마음을 바꾸었다. 중년의 남성이 혼자 미식을 즐기는 일본 드라마를 보고 충동적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 중에 양 손가락이 가득 찰 만큼의 맛집을 들르면서 원하는 만큼 미식을 즐겼다. 그리고는 몇 달 간 묻어두었던 질문을 꺼냈다.

“이대로 원하는 것을 마음껏 즐기면서, 둘이서 행복하게 살 수는 없을까?” 남편과 나는 멈추었던 대화를 시작했다. 꺼내지 못했던 위로의 말을 서로에게 해주었다. 일 년 남짓 ‘우리’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우리는 아이를 가지려고 했던 것일까.


만약 난임 판정을 받지 않았다면 묻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질문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이야기를 나누어도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를 위한 것인지, 우리를 위한 것인지, 그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태어날 아이를 위한 것인지,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다. 단 한 가지 결론만을 낼 수 있었다. 만약 다섯 번째 시험관도 실패로 끝난다면 잠시 아이를 갖는 일을 미루자는 것이었다. 피폐해진 마음에 휴식을 주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얄궃게도 다섯 번째 시험관은 성공도, 실패도 아닌 채로 냉동 배아만을 남기고 끝이 났다. 그런데 지친 마음은 다섯 번째 시험관을 끝으로 모든 것을 미루는 선택을 했다. 무작정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떼쓰는 나를 두고 남편은 “네 선택을 존중한다”고만 했다. 생각도, 결정도, 두 배아만을 남기고 모든 것을 미뤘다.

2편으로 계속! ▶클릭!

글, 그림. 주간조선 김효정 기자(좌) / 매일경제 홍성윤 기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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